부산아재이바구

부산아재이바구 - (지역편) 서울특별시 역사 그리고 지명의유래!!

!..! 2020. 9. 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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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부산아재입니다.

오늘은 부산에 이어 2번째 서울에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이유는

우리아이가 어느날 저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질문에...

 

음...단군할아버지~ 부터 시작을 하다가

아이가 조금 더 컸을때 좀더 자세하게

알려주고 싶어서

하나하나 정리해서 나중에 좀더 크면

 같이 보고자 시작을 하게 되었네요!!

 

-위치-

 

북위 35° 34′ 00″ 동경 126° 58′ 41″

 

 

시청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110

인구 - 9,720,846 명(2020년)

면적 - 605.25 km2

해발 - 35m

 

-상징-

 

시목 -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도시 공해와

병충해에 강해 수명이 긴 나무로 꼽힌다.

서울특별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나무로 은행나무를 지정하였다.

거목으로 성장하는 은행나무의

특성은 수도 서울의 무한한 발전을 보여준다.

 

시화 - 개나리

서울특별시는 1971년 4월 3일

서울을 상징하는 꽃으로 개나리를 선정하였다.
개나리는 서울의 기후와 풍토에 가장 적합한 꽃으로,

이른 봄 일제히 꽃이 피며 서울시민의 협동정신을 표현한다.

 

시조 - 까치

까치는 전래설화에서 사랑의 다리를 놓아주거나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로 등장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까치는 1964년 나라새뽑기

공모에서 압도적 다수로 나라새에 뽑히기도 했다

 

마스코트 - 해치

'해치'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전통성과 문화적

유이미지를 표현하면서 서울 시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문화적 감성으로 개발된

서울의 대표 상징 마크입니다.

'해치'의 사전적 의미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로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해태()의 원말입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로운 의미 이외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단지 화마뿐 아니라 온갖 나쁜 기운을

막아줌과 동시에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서울을 지켜주는 수호자로서의 의미도 함축합니다.

 

'서울의 역사'

 


삼국시대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 서울의 동부에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이 있었다.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곳을 점령한 후 하남위례성에 한산군(漢山郡)을, 

한강 이북에는 남평양(南平壤)을 설치하였다.


551년 백제는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게서 서울과 한강 하류지역을 탈환했으나, 

553년에 나제동맹을 깬 신라에게 공격당하여, 

이 지역을 빼앗겼다. 이후, 신라는 옛 위례성 인근에 한강 유역을 

관할하는 한산주의 치소(治所)를 설치하였다.

 

 

통일신라


삼국통일 후 685년에는 서울의 한강 이북지역은 한산주가 관할하는 북한산군(北漢山郡)이 되었다.
757년에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북한산군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

 

918년(고려 태조 1년)에 한양군을 양주(楊州)로,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를 광주(廣州)로 각각 개칭하였으며,
1067년(고려 문종 21년)에 양주가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1308년에 남경을 한양부로 개편하였고,
1356년(공민왕 5년)에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조선 태조가 1392년에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했다. 당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5년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5부제를 5서제(署制)로 고치고, 47방 288계 775동이 되었다.

 

 

대한제국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개통하였다.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년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908년 전차선로 가설을 위해 성곽의 일부가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도성의 성문이나 성벽 일부를 훼손하고 

신작로나 철로를 개설하는 등, 

조선 개국 이후로 존재했던 

서울의 역사성과 공간구조가 훼손되었다.

 

 

일제강점기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 제국은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지위를 격하시켰다. 

1911년 경성부의 하부기관을 5부 8면으로 구분하여 

성 안은 동·서·남·북·중의 5부로, 

성 밖은 용산·서강·숭신·두모·인창·은평·연희·한지의 8개 면으로 구분하였다.
1914년 면(面) 제도를 폐지하고 부제(府制)를 실시하면서 

용산·숭신·인창·한지·두모면의 일부를 경성부에 편입시키고, 명칭은 정(町)으로 바꾸었다.
1936년 고양군·시흥군·김포군의 일부 면들이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133.94km2로 확장되었다.
1943년 구제를 실시하여, 중구·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서대문구·용산구·영등포구등 7개 구로 나누었다.

 

 

미군정, 대한민국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다.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로 개칭되었으며, 

고양군 뚝도면·숭인면·은평면과 시흥군 도림리·구로리·번대방리 등이 

편입되어 시역이 268.35 km2로 확장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처음으로 6월 28일에 점령했다.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수복하였으나, 

1.4 후퇴 때 다시 서울을 내주고 폐허가 되었다.
1951년 3월 14일에 다시 서울을 수복하였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국무총리 직속기구가 되었고, 시장의 행정적 지위도 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1963년 광주군·양주군·시흥군·김포군·부천군의 7면 54리를 편입하고 

시역을 대규모로 확장하여 593.75 km2가 되었다. 

이 때 이른바 강남 등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 대거 편입되었고,

한강 이북에서는 동북부의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가 편입되었다.
1973년 도봉구와 관악구가 신설되어 11개구가 되었고, 

605.33 km2로 시역이 확장되었다. 이후 기존의 행정구역을 분리하여 

1975년 강남구, 

1977년 강서구, 

1979년 은평구, 강동구, 

1980년 동작구, 구로구, 

1988년 중랑구, 노원구, 양천구, 서초구, 송파구, 

1995년 강북구, 광진구, 금천구가 신설되고 광명시의 일부 지역이 금천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서울 주변의 인천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이 

성장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도시 구조인 수도권이 형성되었다.

 

 

'지명의유래'

 

 

"서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수도(首都)를 뜻하는 

신라 계통의 고유어인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때 한자 가차 표기인 서라벌이 원래 어떤 의미였을지에

대해서도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삼국사기 등에서

서라벌을 금성(金城)으로도 표기했다는 점과

신라(新羅)까지 포함하여 "설[새: 新, 金]-벌[땅: 羅, 城]",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새기는 견해가 있다.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서라벌을 정확히 어떻게

발음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확인된 바가 없으며,

그 발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 후 "셔ᄫᅳᆯ"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이다.

서울의 한자 음차 표기로는 이십일도회고시, 

한경지략, 증보문헌비고의 서울(徐菀),

동사강목, 북학의의 서울(徐蔚),

대동지지의 서울(徐鬱),

앙엽기의 서올(徐兀) 등이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서울은 한양(漢陽), 한성(漢城) 외에도

서울(셔ᄫᅳᆯ), 경도(京都), 경부(京府), 경사(京師),

경성(京城), 경조(京兆)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수선전도에서 알 수 있듯

수선(首善)으로 표기된 예도 있다.

이 중 한양과 한성을 제외하면 모두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들로서 '서울'이 원래는

서울 지역(사대문 안과 성저십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수도를 뜻하는 일반명사였다는 방증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일반명사 '서울'을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고,

경제, 문화, 정치 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라고 정의하고 있다

1910년 10월 1일에 일제가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개칭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서울은 주로 경성(京城, 일본어로는 けいじょう)으로 불렸으며,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성'이란 말은 도태되고 거의 '서울'로 부르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개정 로마자 표기: Seoul Teukbyeolsi
공식 표기: Seoul Special City

서울은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 지명이기 때문에 

서울이라는 한자가 존재하지 않아서 

중국에서는 서울을 한청(중국어 간체자: 汉城, 정체자: 漢城, 병음: Hànchéng, 한성)이라 불러왔고 

1988년 서울올림픽도 한성올림픽이라고 불렀으나, 

2005년에 서울시가 서울과 발음이 유사한 

서우얼(중국어 간체자: 首尔, 정체자: 首爾, 병음: Shǒu'ěr, 수이)을 

서울의 공식적인 중국어 표기로 정하면서 점차 

이 표기가 확산되어 가는 추세이다. 

일본어의 표기는 '소우루'(ソウル)이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의 문서에서, 

서울특별시의 영문 공식 명칭은 "Seoul Independent City"였다. 

직역하면 "서울독립시"이나, 독립시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는 

한국어 관점에 따라 "특별시"(영어: special city)로 번역한 

것이 굳어져 현재 공식명칭(the Seoul Special City)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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